벤 듀크(Ben Duke)의 루이네이션(Ruination)은 무용극을 통해 메데이아 신화를 새롭게 해석한다. 전통적으로 메데이아는 복수를 위해 자신의 아이들을 죽이는 ‘악녀’로 그려지지만, 이 작품은 그녀를 단순한 가해자가 아닌 한 인간으로 바라본다. 듀크는 법정이라는 독창적인 무대를 설정해 메데이아를 한 인간이자 어머니로서 관객이 직접 판단하도록 한다.
법정에서 다시 쓰는 이야기
루이네이션의 가장 인상적인 점은 ‘재판’이라는 형식을 통해 신화를 다시 본다는 점이다. 그녀의 선택이 단순한 분노나 복수가 아니라, 깊은 상처와 버림받음의 결과로 그려진다. 관객은 단순한 구경꾼이 아니라, 증인이자 배심원이 되어 그녀의 행동을 직접 판단할 뿐 아니라 한 인간으로 그녀를 이해하는 과정을 갖게 된다.
가해자인가, 피해자인가? 혹은 둘 다?
이 작품은 메데이아를 무조건적인 가해자가 아니라, 억울함과 고통 속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인물로 보여준다. 그녀의 비극은 개인적인 복수가 아니라, 사회적 억압과 배신의 연속에서 비롯된 것이다. 루이네이션은 ‘극한의 고통 속에서 행한 선택을 온전히 개인의 책임으로 돌릴 수 있는가?’라는 깊은 질문을 던진다.
몸으로 말하는 인간 심연 속 감정
이 작품은 무용과 연극을 결합한 댄스-씨어터(dance-theatre) 형식으로, 몸의 언어로 등장인물들의 분노, 절망, 갈등을 표현하며, 그 자체로 강렬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몸의 언어를 통해 관객은 인물들의 내면을 더욱 생생하게 느끼게 된다.
인간. 메데아
루이네이션은 정의와 죄책감, 인간의 감정을 깊이 탐구하며, ‘옳고 그름’이 단순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메데이아는 더 이상 신화 속 한 장면이 아니라, 우리와 같은 고뇌를 가진 한 인간으로 다가온다.
정의, 도덕, 공정, 상식… 모든 것들이 기준을 잃은 듯이 혼란을 야기하고 있는 2025년에 어떻게 인간을 이해해야 하는지 메데아를 통해 질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