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과 현실의 절묘한 조우
이 작품은 고전의 현대적 해석이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탁월한 사례였다. 제목 자체가 이미 작품의 깊이를 암시한다. ‘헤카베, 헤카베가 아닌’이라는 역설적 표현은 이것이 단순히 고대 그리스 비극의 재현이 아니라, 동시에 현대를 살아가는 한 어머니의 절절한 이야기임을 함축적으로 드러낸다.
두 개의 비극, 하나의 절망
고대의 헤카베
트로이 함락 후 모든 것을 잃은 헤카베의 비극은 참혹하다. 남편 프리아모스와 수많은 아들들의 죽음을 견뎌낸 그녀에게 마지막 희망이었던 막내 폴리도로스마저 배신당해 살해당한다. 안전을 위해 트라키아 왕 폴리메스토르에게 맡겼던 아들이, 트로이의 몰락과 함께 탐욕에 눈먼 왕에 의해 목숨을 잃은 것이다. 오디세우스의 배려로 잠시 자유를 얻어 트라키아 섬에 내린 헤카베는 아들의 시신을 발견하고 광기에 휩싸인다. 그녀의 복수는 참혹했고, 결국 개로 변한 그녀가 묻힌 곳은 ‘퀴노스세마(개의 무덤)’라 불리게 되었다.

현대의 나디아
헤카베 역을 맡은 배우 나디아는 자폐 아동의 어머니이기도 하다. 아들을 위한 최선의 선택이라 믿고 보낸 장애인 센터에서 학대가 벌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녀의 절망은 고대 헤카베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가장 안전해야 할 곳에서, 가장 보호받아야 할 아이가 상처받았다는 현실 앞에서 나디아는 법정 투쟁을 시작한다.
시스템에 대한 고발
나디아의 싸움은 단순한 개인적 복수를 넘어선다. 검사의 조사 과정에서 드러나는 것은 장애에 대한 이해 없이 고용된 인력들, 허술한 관리 시스템, 그리고 이 모든 부실함을 방치한 국가의 무책임이다. 나디아가 외치는 것은 결국 국민을 보호해야 할 국가의 유죄 선언이다.
연출의 힘
이 작품의 가장 큰 성취는 고대 비극의 보편적 감정과 현대적 현실을 자연스럽게 결합시킨 점이다. 헤카베의 고통과 분노가 장애 아동 어머니의 그것과 겹쳐지면서, 관객들은 시공을 초월한 모성의 절망과 분노를 체험하게 된다. 개인의 비극이 사회 시스템의 문제로 확장되는 과정 또한 설득력 있게 그려냈다.
두 시대를 관통하는 어머니의 절규가 무대 위에서 하나가 되는 순간, 우리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고전 재해석을 목도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