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02 – 예술이란 말 너머엔.

나는 연출 노동자이다.

연출 노동자이자 기획 노동자로 작품을 준비하고 있다.

실업보험이 끊긴 지 세 달이 지났다.

요즘 나의 하루는 새벽 5시 30분에 시작된다. 오전 7시부터 10시까지는 대본 창작에 집중한다. 이후 오후 6시까지는 생계를 위한 노동을 하거나 작품 제작을 위한 기획 업무를 진행한다. 협회와 프로덕션 운영 시스템을 구축하고, 재정을 마련하고, 행정과 마케팅을 공부하고 실행한다. 저녁에는 다시 작품과 관련된 자료를 읽고 영상을 본다.

이렇게 계산해 보면 하루 8시간 이상, 일주일에 48시간 이상을 일한다. 하지만 실제로 노동의 대가를 받는 시간은 그 절반 정도에 불과하다. 나머지 시간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 공연을 만들기 위해 투입되는 노동이다.

누군가는 당연하다고 말할지 모른다. 계약서도 없고, 공연도 아직 없고, 지원금도 확정되지 않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나는 질문하게 되었다.
공연이라는 상품을 만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이 노동은 왜 노동으로 계산되지 않는가.

2025년 말, 작품 기획서를 준비하며 예산 시뮬레이션을 해 본 적이 있다. 배우 4명, 음악가 1명, 기술감독 1명, 연출 1명. 총 7명이 프로덕션 준비부터 첫 공연까지 2년 동안 작업한다고 가정했다.
계산 결과 총예산은 약 14만 유로였다.

처음 숫자를 보았을 때 나 역시 놀랐다. 지나치게 큰 액수처럼 보였다. 하지만 세부 항목을 들여다보면 대부분이 인건비였다. 작품을 만들기 위해 실제로 필요한 노동의 비용이었다.

그 예산을 바탕으로 공연 단가를 계산해 한 극장 관계자에게 보여준 적이 있다.
그의 반응은 짧았다.
“이 비용으로 공연을 사 줄 곳이 있다고 생각하나?”

그 말을 들은 순간 이상한 감정이 들었다. 비싸다는 말에 충격을 받은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제야 숫자로 환산된 노동의 가치와 실제 시장이 받아들이는 가치 사이의 간극을 눈앞에서 확인한 기분이었다.

사실 30년 전의 나라면 이런 고민 자체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연극을 하며 살겠다고 결심했을 때 나는 투잡, 쓰리잡을 하는 삶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예술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가 있는 것이고, 내가 좋아서 선택한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 시절의 나는 예술과 노동을 분리해서 생각했다.
그것이 관행이었고 문화였으며, 나 역시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30년이 지난 지금, 나는 더 이상 예술과 노동을 분리하지 않는다.
예술은 노동이다.
단지 여전히 그 노동의 가치가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분야일 뿐이다.

나는 연극 연출을 하기 위해 프랑스에 왔다. 그러나 지난 20여 년 동안은 웹 에이전시에서 UI 개발자로 일하며 생계를 유지했다. 그 노동 덕분에 살아갈 수 있었다. 그렇다고 그것이 오직 생계를 위한 선택만은 아니었다. 나는 그 일도 좋아했고, 공연 기획을 할 때도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렇게 우회 끝에 다시 공연계로 돌아왔다.
공연 창작 노동자로 살아가기 위해서.

하지만 여전히 예술계에는 노동을 열정과 소명이라는 말로 대체하는 문화가 남아 있다. 많은 동료들이 공연계를 떠났고, 남아 있는 사람들 역시 버티고 있다.
그래서 지금의 나는 예술가라는 말보다 연출 노동자라는 표현을 선택한다.

그것은 예술을 낮추기 위한 말이 아니다.
오히려 예술 역시 노동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기 위해서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만약 예술이 노동이라면, 우리는 어떻게 그 노동의 가치를 지킬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창작자들이 끝없는 무급노동, 열정페이에 의존하지 않고 작품을 만들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적은 자원으로도 지속 가능한 창작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을까.

내가 풀어가고 싶은 질문은 하나다:
공연 창작 노동자로, 내게 남은 시간을 어떻게 살아낼 수 있을까?

Image : Yoo · Midjourney ·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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