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05 – 시스템은 기억하는 방식 아닐까?

이번 글에서는 Production OS — Operating System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공연예술 프로덕션은 창작만으로 굴러가지 않는다.
창작, 기획 및 행정, 홍보 및 마케팅이라는 적어도 세 개의 영역이 있고, 각각은 사전 제작 및 기획단계, 제작, 공연및 투어라는 서로 다른 단계에서 유기적으로 움직인다.

1인의 연출자 혹은 기획자는 하나의 프로젝트에서도 이미 1인 다역을 해야 할 판이다. 그런데 여러 프로젝트를 동시에 진행하면서, 각각 필요한 시점에 맞춰 관리, 실행하는 것이 가능할까?
시스템이 갖춰지면 가능하지 않을까?

어느 날, AI에게 물어봤다.
“시스템을 구축했을 때 나는 몇 개 프로젝트까지 운영할 수 있을까?”
AI의 대답은 이랬다.
“너의 철학과 지금까지 해 온 패턴을 분석해보면 7-8개 프로젝트까지 가능해. 5-6개는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고. 이건 너의 Human in the loop 원칙하에서 말하는 거야”
나의 분석과 비슷한 대답이다.

AI와 나눈 대화들이 어떻게 시스템이 될 수 있다는 거지?

아침마다 받아보는 AI 관련 뉴스레터 속 세상은 매일 달랐다.
AI와 1인 운영 기업 시대. AI CEO의 등장. 마치 AI가 마술램프라도 된 것 같은 이야기들이 쏟아졌다.

클로드 AI와 지속해 온 나의 경험은 달랐다.
브레인스토밍을 할 수 있고, 리서치를 도와주고, 이메일이나 서류를 작성할 수 있었다. 이미 많은 부분에서 도움을 받는 것은 사실이었다.
OS 구축의 포부를 나누면서, 각 프로젝트 창에 쌓이는 내용들이 데이터가 되고, 그것을 바탕으로 시스템을 만들어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실제 대화가 프로젝트별로 쌓이고, 메모리 존과 자료 존을 활용하고, 커넥터도 활용하면서 많은 것이 쌓여가고 있었다.

6월 초, 많은 공유와 협업을 통해 데이터가 될 자료는 쌓여 있었지만, 서로 연결되지 못한 자료들은 나의 필요에 적절히 기능하지 못했다. A창에 있는 내용을 다시 요약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반복되었다. B와 C가 어떻게 연결돼야 하는지도 다시 설명해야 했다.
이미 공유된 내용이라도 오늘 새로 연 창에선 짧게라도 다시 공유과정을 거쳐야 했다. 반복하지 않아도 될 작은 행위들에 들어가는 시간들은 원래 진행하고자 했던 일을 지연시켰고, 난 키보드에서 손을 내려놓고 올라오는 짜증을 애써 삼켜야 했다.

이런 질문이 생겼다. “이 대화창들은 서로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까?” “이 데이터를 어떤 형식으로, 어디에 모아야 하는 걸까?”

난 이미 직감적으로 답을 알고 있었다. AI에 내 컴퓨터의 공간 하나를 공유해야 한다.
이 결정을 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묘하게 일어나는 심연의 두려움으로 내가 선택을 계속 지연시키고 있었던 것이었다.

너에게 나의 공간을 열어주마

다음날, Claude AI를 켜고 그동안 모아놓았던 레퍼런스와 쌓아놓았던 질문들을 꺼냈다.
내가 생각하는 프로덕션, 진행하려고 준비 중인 프로젝트들, 그동안 진행해왔던 내용들, 그 과정에서 느낀 답답함과 현재의 병목들.
정리되지 않은 질문들을 날 것 그대로 던졌다.
AI는 여전히 명확하지 않은 생각의 가지들을 정리하고, 방향이 잡힌 질문으로 되물었다.
모르는 용어도 많았다. 모르면 물었다. 확실하지 않으면 다시 설명해달라고 했다.
그렇게 나는 내가 그동안 ‘우물에서 숭늉을 찾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내가 원하는 그림을 그리려면, 대화용 생성형 AI 도구가 아닌, 에이전트 AI 도구가 필요하다는 데 설득되면서 Claude Code를 내 컴퓨터 로컬에 설치했다.
그리고 그와 공유할 Production OS 폴더를 만들었다.
설치과정의 모든 가이드는 Claude AI가 해 주었다.
UI 개발자로 살았던 경험이 확실히 도움이 됐다. 오히려 당시에는 미처 이해하지 못했던 것들을 심화학습하는 과정이 되었다.

공유 폴더를 세팅한 이후에는 시스템에 맞는 Tree 구조를 구성했다.
그리고 각 폴더에 그동안 축적해온 내용들을 용도별로 배치했다.
폴더의 root에는 두 개의 주요 Markdown 파일이 있다. 하나는 MASTER_production_os.md, 다른 하나는 CLAUDE.md.
CLAUDE.md에는 Claude Code가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자동으로 읽어야 하는, AI와 협업하기 위한 모든 규칙을 기록한 문서다.
MASTER_production_os.md는 OS의 실제 모터와 같은 역할을 하는 문서이다.

대화 속에서 결정된 것, 머릿속에만 있는 계획은 이곳에 기록되기 전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취급한다.
이것이 나와 AI가 시스템을 구축하면서 정한 기본 약속이다.
그렇게 설계한 초기 OS는 이런 구조를 갖는다.

경험을 기록하면, 다음 프로젝트의 자산이 된다.

Production OS 속 프로젝트 폴더에는 다시 프로젝트별 서브폴더가 있고, 그 안에는 card.md가 있다.
프로젝트의 의의와 목적, 내용, 세부 진행 플랜, 현재 진행 상황, 다음 진행 내용, 병목 지점 등을 기록하는 문서다.
프로젝트가 진행되면서 계속 업데이트되는 살아있는 데이터이기도 하다.

그리고 하나의 프로젝트가 컨셉에서 실행, 정산까지 한 바퀴 돌고 나면 최종 평가와 점검을 한다.
이 과정에서 운영의 골격을 추려 템플릿으로 만든다.
처음에는 협회 프로젝트용, 프리랜서 미션용, 관계와 기회 추적용 — 세 가지로 시작했다.
지금은 재정, 브랜딩, 아뜰리에 운영 템플릿까지 만들어졌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템플릿이 단순히 ‘다음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틀’만 제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운영 과정에서 겪었던 실수와 병목도 함께 기록한다.
그래서 다음 프로젝트에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한다.

방법과 시스템은 다르다.

7월 초, 협회가 처음으로 지역에서 한국요리 아뜰리에 사업을 진행했다.
지역 문화센터와 함께 실제 아뜰리에를 진행하면서, 기획 단계에서는 생각하지 못했던 몇 가지 문제가 드러났다.
처음에 합의했던 참가 인원이 실제 모집 과정에서 초과했다.
인원이 늘어나면서 재료비도 달라졌다.
견적서는 이미 합의된 상황이었고, 센터의 예산도 증액은 힘든 상황이었다. 참가 인원 초과와 관련해 진행과정에서 소통이 명확하지 않았던 점을 기록했다. 예산운영에서 발생한 변경사항과 그로 인해 생긴 문제점도 기록했다.
공공단체와 처음 사업을 진행하면서 인보이스 청구 플랫폼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됐다. 그 플랫폼을 이용하기 위해 사전에 필요한 절차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강사비 지급이 지연될 수밖에 없다는 것도 경험했다.
실제로 실행해보지 않았다면 알 수 없었던 내용들이다.
이 모든 것은 프로젝트 카드의 ‘주의할 점’ 항목에 적혀 있다.

여기서 나는 ‘아뜰리에를 진행하는 방법’과 ‘시스템’이 다르다는 것을 구분하게 됐다.
방법은 이번 한 번을 어떻게 치를지 알려준다. 시스템은 진행하는 방법과 과정을 알려줄 뿐 아니라, 그 과정에서 얻은 경험을 다음 프로젝트에 다시 사용할 수 있게 한다.
그리고 경험은 다음번에 같은 시행착오를 반복하지 않게 해주는 자산이 된다.

AI와 함께 시스템을 만든다는 것

“대시보드 띄워줘.”
매주 월요일 아침, 하루를 여는 말이다.

예전엔 캘린더를 열고, 메일함을 훑고, 미리 적어둔 노트를 다시 읽으면서 이번 주에 뭐가 급한지, 뭐가 밀렸는지를 매번 새로 정리해야 했다.
지금은 그 정리가 이미 되어 있다.

지금은 화면 하나가 뜨면, 주 포커싱이 먼저 보이고, 그 옆에 이번 달 일정이 있고, 밑으로 마감이 있고, 협회 프로젝트들과 두 개의 프리랜서 미션이 각자 어디까지 왔는지가 나열된다.

“AI와 함께 시스템을 만든다”는 말을 처음 실감하는 건 AI가 뭔가를 대신 해줄 때가 아니었다.
매주 월요일 아침, 캘린더와 메일과 노트를 다시 훑지 않아도 될 때였다.
미간을 찌푸리며 브레인을 열심히 돌려 기억해내지 않아도 나의 일정들이 눈 앞에 일목요연하게 보여질 때였다.

내가 만들고 있는 것은 모든 일을 대신해 주는 AI가 아니다.
내가 어디까지 했는지, 어디에서 막혔는지, 지난번에 무엇을 배웠는지를 매번 처음부터 기억해내지 않아도 되게 만드는 시스템이다.

어쩌면 시스템이란 결국 기억하는 방식인지도 모르겠다.
한 번의 프로젝트에서 얻은 경험을 다음 프로젝트로 가져가는 것. 같은 일을 여러 번 반복하지 않게 하는 것.
그리고 한 사람의 머릿속에만 있던 운영 능력을, 다시 사용할 수 있는 구조로 바꾸는 것.

지금 나는 한걸음 한걸음 Production OS를 만들어가고 있다.

Image par Yoo · Midjourney ·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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