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9월의 소음
9월, 소셜과 미디어는 AI들이 만들어 낼 디스토피아 세상으로 뜨거웠다.
AI가 10년 안에 인간을 지배하게 될 거라는 가설, 주요 AI 기업 CEO들이 잇달아 내놓은 경고, ‘이제는 멈춰야 한다’는 목소리. 불과 얼마 전까지는 찬양이 판을 쳤다. AI가 모든 것을 바꿔줄 거라고.
매일 AI와 일하는 나에게는 두 이야기 모두 크게 와닿지 않았다. 공포와 찬양이 서로 반대편에 있는 것 같지만, 이상하게도 둘 다 같은 쪽을 향하는 마케팅처럼 들렸다.
그래도 잠깐 이런 생각은 했다. AI 서비스가 정말 멈추면 어떡하지?
그 생각은 오래가지 않았다. 이미 경험해버린 편리함과 가능성을 사람들이 그렇게 쉽게 포기할 것 같지는 않았다. 인간의 욕망은 대체로 브레이크보단 액셀을 선호한다.
2. 같은 시기, 내 현장
Act Anywhere의 활동이 조금씩 넓어지고 있었다.
3월부터 8월까지 지역 문화센터 한 곳에서 아뜰리에 하나를 성사시킨 게 전부였다면, 4분기에는 세 개의 아뜰리에가 정식 프로그램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마이너스에서 시작한 재무표는 상승 곡선으로 돌아섰다. 함께 일하는 prestataires가 생겼고, 지역 공공 파트너도 생겼다.
9월 초 지역 협회 박람회가 끝난 뒤에는 새로운 단체들과의 만남도 이어졌다. 그러자 stand-by 상태였던 일들이 한꺼번에 수면 위로 올라왔다.
하루는 클로드에게 물었다. “요즘 너무 피곤해. 뇌가 잠을 안 자는 거 같아. 현재 대시보드를 보면 다 기록되어 있지 않아. 뭔가 자꾸 새는데?”
클로드는 입에 발린 위로를 하지 않는다. 적어도 나랑 일하는 클로드는. 대신 지금 내가 동시에 관리하고 있는 프로젝트와 역할을 숫자로 정리해 보여줬다. 결론은 단순했다.
“협회 이름으로 굴리는 프로젝트 8개. 각 프로젝트가 서로 다른 Phase로 굴러가고 있습니다. 거기에 생계를 위한 일, 프로젝트에 걸려 있지 않은 협회의 일상 업무 루틴이 재정, 행정, 관계 차원으로 확장되었습니다. 1인이 하기에는 과한 상황입니다.”
나는 물었다. “너랑 같이 일하는데도?”
지금 시스템에서는 모든 단계의 체크와 감수와 승인을 내가 직접 하고 있다. 일이 갑자기 많아지면 AI가 일부 작업을 빠르게 해도, 마지막 병목은 결국 나에게 생긴다.
“OS 2단계 업그레이드 할 타이밍이군. 너한테 어떤 부분을 더 넘길 수 있을지. 하지만 최종 감수는 계속 내가 해.”
1단계의 OS는 각 프로젝트가 어디까지 왔는지를 기억해 주는 시스템이었다. 9월의 나에게 필요한 건 그다음이었다.
먼저, 연결. 협회의 일은 프로젝트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파트너와 기회를 따라가는 파이프라인, 재정과 행정 같은 운영, 그리고 커뮤니케이션이 있다. 이것들이 각 프로젝트와 어디에서 이어지는지 보여야 했다.
그런데 파이프라인의 연결 지점은 처음부터 있던 것이 아니었다. 현장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나타났다. 한 번의 만남이 여러 프로젝트로 이어지고, 한 파트너가 여러 아뜰리에의 창구가 되면서 선이 하나둘 생겨났다. 연결은 설계해서 생긴 게 아니라, 움직이면서 드러났다.
솔직히 아직 다 선명하지는 않다. 관계의 연결고리는 또렷하게 보이는데, 운영과 커뮤니케이션은 각 프로젝트와 어디에서 만나는지 아직 애매하다. 계속 찾는 중이다.
그리고 시간. 이번 달에 할 일, 이번 주에 할 일, 오늘 할 일. 세 단위의 일이 한 화면에 함께 보여야 했다. 하루를 통째로 써야 하는 일인지, 쪼개서 할 수 있는 일인지까지.
9월, 클로드와 함께 만들던 OS를 그 방향으로 다시 짰다. 일의 양이 줄어든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피로감은 조금 줄었다.
AI 공포 이야기가 소셜을 뒤덮던 바로 그때였다.
3. 내 주변의 현실
AI 공포 담론이 그리는 세상과 내가 사는 현실 사이에는 꽤 큰 거리가 있다. 내 주변의 일터만 봐도 AI를 제대로 업무 구조 안에 넣어 쓰는 곳은 많지 않다.
여전히 비효율적인 시스템 위에 사람의 노동력을 계속 얹어가며 버티는 조직이 훨씬 많다. 그리고 사람들은 지친다.
대학 조교수로 임용된 친구 하나는 담당 학생, 강의 준비, 행정 업무, 거의 매일 ‘긴급’이라는 제목을 달고 들어오는 메일, 밤늦게까지 이어지는 연락 속에서 산다. 한 공공 문화기관에서 일하는 친구는 survie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어느 순간부터는 자기 기억력까지 의심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AI가 사람을 삼켜버릴 미래를 걱정하고 있는데, 정작 사람을 소진시키는 시스템은 이미 너무 오래전부터 존재했던 것 아닌가.
조직은 재정 긴축을 이유로 인력을 줄인다. 두 사람이 해도 빠듯한 양의 일을 한 사람에게 넘긴다. 그렇다면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만큼 일의 양을 줄이든가? 효율적인 시스템을 구축하고 새로운 조직 문화를 만들던가? 그렇지는 않다. 노동법이 있으면 뭐 하나, 싶을 때가 있다.
문제는 AI 자체가 아니라, 일을 어떻게 조직하고 어떤 조직문화를 만드느냐이다. 빨라지는 것과 달라지는 것은 다른 이야기다. 원래 하던 순서 중간에 AI만 끼워 넣으면 일은 조금 빨라질 수 있다. 그러나 일하는 방식은 그대로 남는다.
그렇다면 우리가 정말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AI일까? 아니면 관성의 법칙으로 굴러가는 인간의 문화일까?
4. 보이지 않던 노동
얼마 전부터 나는 협회 일에 쓰는 시간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문화 프로덕션 하나를 운영하는 데 실제로 얼마만큼의 노동이 들어가는지 알고 싶었다. 어떤 역할이 필요하고, 각각에 얼마의 시간이 들며, 그 노동의 가치를 어떻게 계산해야 하는지 기준을 만들기 위해서다. 그 기준은 나중에 재정지원 신청서에서 인건비를 책정하는 근거가 될 수도 있다.
시간을 세기로 결정한 것은 최근인데, 7월 중순부터 9월 말까지 두 달 반의 노동을 상당 부분 거슬러 올라가 복원할 수 있었다. 시간을 재려고 남겨둔 기록이 아니었다. 일을 굴리기 위해 남긴 기록이었다.
왜 그렇게 많은 것이 남아 있었을까.
AI와 일하면서 만든 규칙 때문이었다. 대화만으로는 다음 작업에 안정적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처음부터 한 가지 원칙을 두었다.
대화나 머릿속이 아니라, 파일에 적힌 것만 존재한다.
현장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내가 보고한다. 결정된 것은 기록한다. 기록은 다음 날의 작업으로 넘어간다.
그러다 보니 내가 누구에게 연락했고, 무엇을 준비했고, 어떤 결정을 했고, 어디에서 시간이 들었는지가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남아 있었다.
AI의 한계 때문에 만든 습관이 오히려 내 노동을 보이게 만든 것이다.
사람을 갈아 넣는 일터에서 노동의 가치가 폄하되는 것은, 어쩌면 그 노동의 디테일을 아무도 세지 않기 때문 아닐까.
메일에 답하는 시간. 사람 사이를 조율하는 시간. 회의 전에 준비하는 시간. 실수를 막기 위해 다시 확인하는 시간. 프로젝트가 멈추지 않도록 다음 일을 미리 생각하는 시간.
이런 노동은 대부분 결과물 뒤로 사라진다. 하지만 사라진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기록하기 시작하면 보인다.
보이기 시작하면 값을 물을 수 있다.
5. 백 퍼센트 믿지 않는다
열 가지가 넘는 일을 서로 다른 역할과 능력으로 굴리고 있는 지금, 가끔 생각한다.
AI시대가 아니었다면 가능했을까. 아마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렇다고 AI가 나 대신 모든 것을 해주는 것도 아니다.
나는 모든 능력을 가진 사람이 아니다. 비서의 리서치와 제안과 질문을 통해 배우고, 다시 확인하고, 선택하고, 감수하면서 일을 해나갈 뿐이다.
그리고 나는 AI를 백 퍼센트 믿지 않는다. 나 자신도 백 퍼센트 믿지 않는다. 그래서 기록하고, 확인하고, 다시 묻는다.
조금 더 나은 방향과 방법을 고르려고 한다. 적어도 나와 내가 사는 생태계에 조금 덜 해롭고, 조금 더 나은 쪽으로.
공포도 찬양도 내가 매일 하는 일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내가 할 수 있을 일을 묵묵히 해 가는 것. 그게 나의 선택이다.
Image par Yoo · Midjourney · 2026
